Brain Art (Dongsu Jang_Special Invitation Exhibition)

Brain Art

제13회 오대산문화축전 특별초대전  장동수 : 브레인아트
2016.10.8 ~ 10.16 오대산 월정사 내 금강루

1

천오백년 고찰 월정사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의 핵심 도량에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매개하며 영역 간 소통 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은 21세기 종교가 나아갈 바를 예견하고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동시대 정신문화에 대해 근본적 인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뜻깊다. 근대사회는 과학과 예 술, 그리고 종교 이 세 영역으로 나뉘어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각자의 세계 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통합적인 세계관을 체계적인 영역분할로 변 모하게 했으며, 동시에 영역 간 전문화에 따른 소통 불가능성을 높여왔다. 탈근대사회는 이 세 영역 간의 융합을 통하여 통합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 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영역 가 운데 하나인 종교에서도 영역 간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할 정도로 융합의 시 대정신은 불가역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상태를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까? 월정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종교가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 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매우 혁신적이 며 성찰적인 일이다. 이러한 실험은 뇌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깨달음이 라는 종교적 정신성의 상태를 오롯이 해명해나가는 과정을 거칠 것이며, 궁 극적으로는 기복신앙 기반의 불교를 정신적 성찰의 장으로 진일보하도록 할 것이다. 기실 동시대 불교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수양을 통하여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정신성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당위로 다가 서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양자 간의 만남을 매개하는 예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장동수 초대전은 과학정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장이다. 장동수는 의과대학 병원에서 의사들과 함 께 의학 관련 시각이미지를 생산하는 메디컬 드로잉(medical drawing) 전 문가다. 그는 그림과 조각을 비롯한 각종 시각이미지 생산 기술은 물론 다 년간 의사들과 협업해오면서 의학지식까지 갖춘 예술가다. 그는 10여 년 전 부터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인 지식과 의학적인 작업 방법론을 도입한 작업 들을 해왔다. 이 가운데서도 뇌와 관련한 각별한 관심은 다량의 브레인아트(brain art)를 낳았다. 브레인아트는 뇌를 작업의 소재로 끌어들이거나 뇌과 학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이다. 장동수는 의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뇌과학 이 시사하는바, 인간의 의식이 발원하는 물질적 실체로서의 뇌를 다양한 방 식으로 다루고 있다.

장동수의 브레인아트는 인간의 뇌로부터 발현하는 사유가 그의 존재 자체임을 암시한다. 그는 여러 가지 색채와 형태의 뇌를 보여줌으로써 각 각의 인간 개체가 가진 고유한 존재의미를 되새긴다. 뇌의 단면을 입체 조 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간 정신의 물질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뇌화한 마음 (embrained mind)을 시각화한 그의 조각들에는 자아, 기억, 존재, 의식 등 종교와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담겨있다. 나아가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뇌 과학적 개념들을 재구성하여 ‘나 없음의 사유’를 제안한다. 뇌를 비운 인간 의 모습에서 번뇌를 덜어낸 해탈의 경지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나 없음 의 상황을 통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장동수의 브레인아트에는 존재와 의식의 문제에서 부터 감각과 인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뇌과학적 요소들과 더불 어 폭넓은 인간이해를 촉구하는 명상적 서사가 담겨있다.

2

인류 역사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표현해왔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외형을 재현함으로써 그의 골격과 외피를 통하여 인간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장동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 제기를 던진다. 그의 세 번째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생각의 지배>는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인 간의 본성을 다루고자 하는 문제작이다. 인간의 얼굴 전면을 잘라낸 이 충 격적인 이미지는 인류역사가 구축해온 인간 이해를 전면 부정하는 도발이 다. 이마 위에서 턱에 이르기까지의 절단면을 제시한 2미터짜리 조각 작품 은 인간 뇌의 대뇌피질과 안구, 코, 혀, 턱뼈, 해골뼈, 외피 등의 절단면을 사 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피부에 덮여 보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생명 체의 구조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07년 작 <자아의 진실>의 확대 버전이다. 구작은 턱을 고이고 있는 팔과 얼굴 절단면을 제시한 작품으로서, 생각에 잠긴 인간의 모 습을 담고 있다. 턱을 고인 채 생각에 잠긴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 평범한 도 상을 가지고 매우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해낸 것이다. 10년 전 장동 수의 생각이었다.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메디컬 아트를 향한 장동수만의 독특한 세계를 연 출발이었다. 당시 그는 뇌 이미지를 이용한 소조나 부조, 영상 작품들을 비롯하여 인간의 신체 이미지를 절단하고 해체 하여 제시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기표로서의 인간이미지를 파괴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외피만을 근거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면면을 파악하고 자 했던 인류문명의 관행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부정이 아니 라 인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구작에서 나타난 절단면 두상 표현이 최근작 <생각의 지배>에서 거 대한 얼굴 절단면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의학적 관 점에서 인체를 탐구하면서 메디컬 드로잉과 메디컬 아트를 병행해온 장 동수의 삶과 예술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최근작 다. 이 작품은 얼굴을 포함한 몸통을 직육면체로 절단한 이 미지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해부학적 전통으로부터 출발한다. 해부학은 인 체를 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근대 초기의 과학자들과 예 술가들이 연구했던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신비주의 이해를 넘어 골격과 근 육, 장기 등에 대한 정확인 이해를 바탕으로 인체를 다루고자 했던 과학정 신은 예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관을 매달아 놓고 그 아래 카데바(해부용 시체, cadaver) 형 상을 배치하는 설치미술을 통하여 물질로서의 인체를 다루고 있는 해부학 적 경험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하기도 했다. 죽음에 관한 막연한 공포 를 극복하고, 그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장동수의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얼굴의 이목구비 자리에 내장을 위치시켜놓은 과격한 이미지에서도 틀에 박힌 인 간이해를 넘어서려는 치열한 사유실험을 읽어낼 수 있다. 설치작품 <생각 의 지배>는 바닥에 뇌 단면 이미지들을 설치한 것으로서 각각 다른 색깔의 뇌를 통하여 인간들이 얼마나 개별적이고 파편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렇듯 장동수의 세계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그 너머의 정신성(spirituality)을 지향한다.

그는 인체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산수풍경을 재현하기도 하고, 인체와 나비 이미지를 중첩하여 장자의 호접몽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장동수 의 예술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생명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 래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그물망 속에 담긴 인드라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의학이라는 과학 영역에서 발굴한 의 제들을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 문제 수준으로 압축하여 그것을 다시 예술과 종교의 의제들과 만나게 하는 융합의 과정 위에 놓여있다. 물론 그가 특정 한 종교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어 작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의과대학에서 일하는 예술가라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매우 전문적인 과학 적 관점을 견지한 채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장동수의 융합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하여 종교와 예술의 공통분모인 정신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장동수는 첫 전시의 무게를 덜고 만화 캐릭터 같 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무뇌아이(no brain)라는 심란한 주제를 단순한 캐릭 터로 선보인 이 전시를 통하여 그는 의학과 뇌과학이 우리 일상 깊숙이 들 어와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 존재의 결핍을 막연한 연민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새로 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기실 인간의 병리현상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켜켜이 쌓여 온갖 차별과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현대과학이 새 롭게 풀어주는 문제들에 대해 귀 기울이고 그것을 예술적 소통으로 풀어내 겠다는 장동수의 생각과 실천은 동시대 문명의 첨단을 인용하는 융합의 시 대정신 그 자체다.

세 차례에 걸친 장동수의 개인전에서 그는 첨단의 의제를 자신의 어법 으로 차분하게 풀어내는 여유와 끈기를 보여주었다. 장동수의 메디컬아트 가 동시대 예술 흐름에 유의미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술결 정론적 시각에 경도된 뉴미디어아트와 달리 과학정신에 기반을 둔 올드미 디어아트라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소조와 조각, 영상, 사진 등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지만,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 중심에는 조소예술이 있다. 그는 붙이고, 빚고, 깎고, 다듬는 소조와 조각의 방법으로 굵직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의 의학지식을 접하고 있는 장동수가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풀어내는 어법이 올드미디어라는 점은 새로운 지 식을 접하는 예술가의 태도와 그것을 이해하는 비평과 기획의 자세에도 모 종의 경종을 울려준다.

3

장동수는 생각이나 자아, 기억, 존재와 의식, 삶, 자연, 신체 등의 존재론적 인 의제들을 다뤄왔다. 나아가 해부학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의 직업이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결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의 작업이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존재 론적인 질문과 마주할 것이라는 점을 가늠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이다. 그는 예술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것은 먼저 한 톨과 우주를 함 께 사유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벌어지는 하 나의 사건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관점의 인간 이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 인식에 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진다 는 점에서 장동수 예술의 향배는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존재와 의식에 관한 이 오래된 테제는 철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관념론을 극복하고 경험과학을 토대로 새로운 유물론을 세우고자 했던 19세기 지식인들이 남 겨준 유산이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 존재에 근거한다는 점을 생물학적 차 원에서 재구성한 논의가 신체화한 마음(embodied mine)이다. 좀 더 정교하 게 접근하자면 그것은 뇌화한 마음(embrained mind)다. 그것은 인간의 정 신이 신체에 의해 직조된다는 점, 특히 뇌작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주 목한다. 따라서 존재와 의식 수준으로 논변했던 19세기 유물론은 인간의 뇌 를 제2의 자연으로 호명하는 제럴드 에델만에 이르러 뇌기반인식론(brainbased epistemology)으로 진화했다. 장동수의 예술, 특히 뇌괴학을 탑재한 그의 브레인아트는 최신의 과학적 논리를 근거로 인간 본성을 다루는 첨단 의 예술이다.

장동수는 과학과 예술, 종교로 나뉜 근대적 사유의 지평을 통합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탈근대적 융합 실험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는 의과대학 의 해부학 실험실로부터 과학예술 실험의 장으로 삶과 예술의 장을 확산해 왔다. 그는 의술을 의학의 관점으로, 기술을 과학의 차원으로 소환하여 그 속에 담긴 본질을 찾아내려는 환원주의 태도를 견지하고 그것을 다시 영역 간의 융합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환원과 확산을 연동하는 변 증법적 태도이다. 환원의 힘을 잘 쓸 줄 아는 예술가에게는 자기 생각을 확 산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사물의 현상에서 공통의 논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원리로 걸러내는 일, 나아가 다시 그것을 또 다 른 개별적이고 특수한 현상 속에서 재확인하는 환원과 확산의 순환고리야 말로 예술가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창작자나 제작자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필연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것은 미술(시각예술)을 미학(감성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는 당위와도 직결하는 문제다. 미술이라고 불리는 시각예술은 그림을 그리 거나 입체를 제작해내는 창작이나 제작의 기술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 회, 자연의 순환고리 속에서 개별과 우주의 문제를 사유하는 감성적 인식의 학문, 즉 감성학에 맞닿아 있음을 상기해볼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동수 의 예술은 자신의 과학적 사유를 예술적 소통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와 자연, 즉 우주에 관한 인류의 새 로운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천적 예술이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을 탐구해온 수만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드는 일이다. 장 동수의 예술은 뇌화한 마음의 실재를 찾아 나선 뇌과학적 탐구와 그것을 예 술적 소통 기제와 접목한 브레인아트의 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뇌화한 마음의 실재를 향하여_김준기 예술학, 미술평론가

2018-03-20T20:32: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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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in Art

제13회 오대산문화축전 특별초대전  장동수 : 브레인아트
2016.10.8 ~ 10.16 오대산 월정사 내 금강루

1

천오백년 고찰 월정사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주선하고 있다. 한국 불교계의 핵심 도량에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매개하며 영역 간 소통 을 추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은 21세기 종교가 나아갈 바를 예견하고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고자 하는 시도로서, 동시대 정신문화에 대해 근본적 인 질문과 해답을 제시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뜻깊다. 근대사회는 과학과 예 술, 그리고 종교 이 세 영역으로 나뉘어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각자의 세계 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통합적인 세계관을 체계적인 영역분할로 변 모하게 했으며, 동시에 영역 간 전문화에 따른 소통 불가능성을 높여왔다. 탈근대사회는 이 세 영역 간의 융합을 통하여 통합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것 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만들어나가고 있다. 사회의 가장 보수적인 영역 가 운데 하나인 종교에서도 영역 간의 새로운 만남을 시도할 정도로 융합의 시 대정신은 불가역적인 힘으로 작동하고 있다.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상태를 어떻게 하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까? 월정사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종교가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 으로 새로운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는 매우 혁신적이 며 성찰적인 일이다. 이러한 실험은 뇌과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깨달음이 라는 종교적 정신성의 상태를 오롯이 해명해나가는 과정을 거칠 것이며, 궁 극적으로는 기복신앙 기반의 불교를 정신적 성찰의 장으로 진일보하도록 할 것이다. 기실 동시대 불교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개인의 수양을 통하여 삶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게 하는 정신성의 문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교와 과학의 만남은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당위로 다가 서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양자 간의 만남을 매개하는 예술의 역할 또한 매우 중요하다.

장동수 초대전은 과학정신과 예술의 융합을 통하여 인간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구하는 장이다. 장동수는 의과대학 병원에서 의사들과 함 께 의학 관련 시각이미지를 생산하는 메디컬 드로잉(medical drawing) 전 문가다. 그는 그림과 조각을 비롯한 각종 시각이미지 생산 기술은 물론 다 년간 의사들과 협업해오면서 의학지식까지 갖춘 예술가다. 그는 10여 년 전 부터 인체에 대한 해부학적인 지식과 의학적인 작업 방법론을 도입한 작업 들을 해왔다. 이 가운데서도 뇌와 관련한 각별한 관심은 다량의 브레인아트(brain art)를 낳았다. 브레인아트는 뇌를 작업의 소재로 끌어들이거나 뇌과 학적 의제를 다루는 예술이다. 장동수는 의학적 관점에서 출발하여 뇌과학 이 시사하는바, 인간의 의식이 발원하는 물질적 실체로서의 뇌를 다양한 방 식으로 다루고 있다.

장동수의 브레인아트는 인간의 뇌로부터 발현하는 사유가 그의 존재 자체임을 암시한다. 그는 여러 가지 색채와 형태의 뇌를 보여줌으로써 각 각의 인간 개체가 가진 고유한 존재의미를 되새긴다. 뇌의 단면을 입체 조 각으로 드러냄으로써 인간 정신의 물질성을 내비치기도 한다. 뇌화한 마음 (embrained mind)을 시각화한 그의 조각들에는 자아, 기억, 존재, 의식 등 종교와 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담겨있다. 나아가 그는 인간 존재에 대한 뇌 과학적 개념들을 재구성하여 ‘나 없음의 사유’를 제안한다. 뇌를 비운 인간 의 모습에서 번뇌를 덜어낸 해탈의 경지를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나 없음 의 상황을 통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렇듯 장동수의 브레인아트에는 존재와 의식의 문제에서 부터 감각과 인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뇌과학적 요소들과 더불 어 폭넓은 인간이해를 촉구하는 명상적 서사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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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의 수많은 예술가들이 인간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인간의 형상을 표현해왔다. 그것은 살아있는 생명체의 외형을 재현함으로써 그의 골격과 외피를 통하여 인간의 면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장동수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 제기를 던진다. 그의 세 번째 개인전에 출품한 작품 <생각의 지배>는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인 간의 본성을 다루고자 하는 문제작이다. 인간의 얼굴 전면을 잘라낸 이 충 격적인 이미지는 인류역사가 구축해온 인간 이해를 전면 부정하는 도발이 다. 이마 위에서 턱에 이르기까지의 절단면을 제시한 2미터짜리 조각 작품 은 인간 뇌의 대뇌피질과 안구, 코, 혀, 턱뼈, 해골뼈, 외피 등의 절단면을 사 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것은 피부에 덮여 보이지 않은 인간이라는 생명 체의 구조를 생생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2007년 작 <자아의 진실>의 확대 버전이다. 구작은 턱을 고이고 있는 팔과 얼굴 절단면을 제시한 작품으로서, 생각에 잠긴 인간의 모 습을 담고 있다. 턱을 고인 채 생각에 잠긴 인간의 모습이라는 이 평범한 도 상을 가지고 매우 충격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해낸 것이다. 10년 전 장동 수의 생각이었다.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한 이 작품은 메디컬 아트를 향한 장동수만의 독특한 세계를 연 출발이었다. 당시 그는 뇌 이미지를 이용한 소조나 부조, 영상 작품들을 비롯하여 인간의 신체 이미지를 절단하고 해체 하여 제시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인 기표로서의 인간이미지를 파괴하는 작업을 했다. 그것은 외피만을 근거로 인간이라는 생명체의 면면을 파악하고 자 했던 인류문명의 관행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부정이 아니 라 인간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구작에서 나타난 절단면 두상 표현이 최근작 <생각의 지배>에서 거 대한 얼굴 절단면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의학적 관 점에서 인체를 탐구하면서 메디컬 드로잉과 메디컬 아트를 병행해온 장 동수의 삶과 예술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최근작 다. 이 작품은 얼굴을 포함한 몸통을 직육면체로 절단한 이 미지다. 이러한 인간 이해는 해부학적 전통으로부터 출발한다. 해부학은 인 체를 보다 과학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근대 초기의 과학자들과 예 술가들이 연구했던 학문이다. 인간에 대한 신비주의 이해를 넘어 골격과 근 육, 장기 등에 대한 정확인 이해를 바탕으로 인체를 다루고자 했던 과학정 신은 예술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또한 관을 매달아 놓고 그 아래 카데바(해부용 시체, cadaver) 형 상을 배치하는 설치미술을 통하여 물질로서의 인체를 다루고 있는 해부학 적 경험을 삶과 죽음의 문제로 연결하기도 했다. 죽음에 관한 막연한 공포 를 극복하고, 그 너머의 또 다른 삶을 찾아 나서는 인간의 정신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는 장동수의 세계관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 밖에도 얼굴의 이목구비 자리에 내장을 위치시켜놓은 과격한 이미지에서도 틀에 박힌 인 간이해를 넘어서려는 치열한 사유실험을 읽어낼 수 있다. 설치작품 <생각 의 지배>는 바닥에 뇌 단면 이미지들을 설치한 것으로서 각각 다른 색깔의 뇌를 통하여 인간들이 얼마나 개별적이고 파편적으로 존재하는지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렇듯 장동수의 세계는 삶과 죽음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그 너머의 정신성(spirituality)을 지향한다.

그는 인체의 이미지를 이용하여 산수풍경을 재현하기도 하고, 인체와 나비 이미지를 중첩하여 장자의 호접몽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장동수 의 예술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모든 생명체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 래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그물망 속에 담긴 인드라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운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은 의학이라는 과학 영역에서 발굴한 의 제들을 인간 존재에 관한 근본 문제 수준으로 압축하여 그것을 다시 예술과 종교의 의제들과 만나게 하는 융합의 과정 위에 놓여있다. 물론 그가 특정 한 종교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어 작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의과대학에서 일하는 예술가라는 직업적 특성을 살려 매우 전문적인 과학 적 관점을 견지한 채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렇듯 장동수의 융합은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하여 종교와 예술의 공통분모인 정신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장동수는 첫 전시의 무게를 덜고 만화 캐릭터 같 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무뇌아이(no brain)라는 심란한 주제를 단순한 캐릭 터로 선보인 이 전시를 통하여 그는 의학과 뇌과학이 우리 일상 깊숙이 들 어와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인간 존재의 결핍을 막연한 연민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새로 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기실 인간의 병리현상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발생했으며 그것이 켜켜이 쌓여 온갖 차별과 억압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현대과학이 새 롭게 풀어주는 문제들에 대해 귀 기울이고 그것을 예술적 소통으로 풀어내 겠다는 장동수의 생각과 실천은 동시대 문명의 첨단을 인용하는 융합의 시 대정신 그 자체다.

세 차례에 걸친 장동수의 개인전에서 그는 첨단의 의제를 자신의 어법 으로 차분하게 풀어내는 여유와 끈기를 보여주었다. 장동수의 메디컬아트 가 동시대 예술 흐름에 유의미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이유는 그것이 기술결 정론적 시각에 경도된 뉴미디어아트와 달리 과학정신에 기반을 둔 올드미 디어아트라는 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소조와 조각, 영상, 사진 등의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지만,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세계 중심에는 조소예술이 있다. 그는 붙이고, 빚고, 깎고, 다듬는 소조와 조각의 방법으로 굵직한 작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첨단의 의학지식을 접하고 있는 장동수가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풀어내는 어법이 올드미디어라는 점은 새로운 지 식을 접하는 예술가의 태도와 그것을 이해하는 비평과 기획의 자세에도 모 종의 경종을 울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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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수는 생각이나 자아, 기억, 존재와 의식, 삶, 자연, 신체 등의 존재론적 인 의제들을 다뤄왔다. 나아가 해부학 연구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그의 직업이 삶과 죽음의 문제와 직결해 있다는 점을 상기해볼 때, 그의 작업이 인간 존재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과 더불어 인간이라는 생명체에 대한 존재 론적인 질문과 마주할 것이라는 점을 가늠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 이다. 그는 예술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에 다가서고자 한다. 그것은 먼저 한 톨과 우주를 함 께 사유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삶과 죽음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벌어지는 하 나의 사건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러한 우주적 관점의 인간 이해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넘어 인간 인식에 관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진다 는 점에서 장동수 예술의 향배는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존재와 의식에 관한 이 오래된 테제는 철학과 역사의 관점에서 관념론을 극복하고 경험과학을 토대로 새로운 유물론을 세우고자 했던 19세기 지식인들이 남 겨준 유산이다. 인간의 의식이 인간 존재에 근거한다는 점을 생물학적 차 원에서 재구성한 논의가 신체화한 마음(embodied mine)이다. 좀 더 정교하 게 접근하자면 그것은 뇌화한 마음(embrained mind)다. 그것은 인간의 정 신이 신체에 의해 직조된다는 점, 특히 뇌작용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주 목한다. 따라서 존재와 의식 수준으로 논변했던 19세기 유물론은 인간의 뇌 를 제2의 자연으로 호명하는 제럴드 에델만에 이르러 뇌기반인식론(brainbased epistemology)으로 진화했다. 장동수의 예술, 특히 뇌괴학을 탑재한 그의 브레인아트는 최신의 과학적 논리를 근거로 인간 본성을 다루는 첨단 의 예술이다.

장동수는 과학과 예술, 종교로 나뉜 근대적 사유의 지평을 통합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탈근대적 융합 실험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그는 의과대학 의 해부학 실험실로부터 과학예술 실험의 장으로 삶과 예술의 장을 확산해 왔다. 그는 의술을 의학의 관점으로, 기술을 과학의 차원으로 소환하여 그 속에 담긴 본질을 찾아내려는 환원주의 태도를 견지하고 그것을 다시 영역 간의 융합으로 확산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은 환원과 확산을 연동하는 변 증법적 태도이다. 환원의 힘을 잘 쓸 줄 아는 예술가에게는 자기 생각을 확 산으로까지 끌고 갈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사물의 현상에서 공통의 논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보편적인 원리로 걸러내는 일, 나아가 다시 그것을 또 다 른 개별적이고 특수한 현상 속에서 재확인하는 환원과 확산의 순환고리야 말로 예술가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창작자나 제작자 수준을 넘어서기 위해 필연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이다.

그것은 미술(시각예술)을 미학(감성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는 당위와도 직결하는 문제다. 미술이라고 불리는 시각예술은 그림을 그리 거나 입체를 제작해내는 창작이나 제작의 기술일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사 회, 자연의 순환고리 속에서 개별과 우주의 문제를 사유하는 감성적 인식의 학문, 즉 감성학에 맞닿아 있음을 상기해볼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동수 의 예술은 자신의 과학적 사유를 예술적 소통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과 사회와 자연, 즉 우주에 관한 인류의 새 로운 합의를 도출하고자 하는 실천적 예술이다. 그것은 인간 정신의 본질을 탐구해온 수만년에 걸친 인류 문명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만드는 일이다. 장 동수의 예술은 뇌화한 마음의 실재를 찾아 나선 뇌과학적 탐구와 그것을 예 술적 소통 기제와 접목한 브레인아트의 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뇌화한 마음의 실재를 향하여_김준기 예술학, 미술평론가

2018-03-20T20:03:2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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